
워싱턴DC 링컨기념관 구글맵 캡처 *주소: 2 Lincoln Memorial Circle NW Washington, DC 20037 United States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은 미국 수도 워싱턴 D.C. 내셔널 몰 서쪽 끝에 위치한 미국의 대표적인 국가 기념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Abraham Lincoln을 기리는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국가적 분열과 갈등을 어떻게 기억하고 극복하려 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링컨기념관은 한 인물만을 기리는 공간이 아니라 미국의 통합, 자유, 민주주의, 시민권 운동의 역사까지 함께 담고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링컨(사진)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국가를 이끌었고, 분열되었던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노예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미국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 암살되었고, 그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대통령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국가 통합의 상징적 존재를 잃었다고 생각하였다.
링컨이 사망한 직후부터 기념관 건립 논의가 나타났지만 실제 건립 과정은 매우 길고 복잡하였다. 1869년부터 공식적인 기념사업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어디에 세울 것인지,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오랫동안 충돌하였다. 일부는 거대한 동상을 원했고, 다른 일부는 도서관이나 교육기관 같은 실용적 시설을 원했다. 장소를 둘러싼 논쟁도 상당했다. 어떤 사람은 국회의사당 근처를 주장했고, 또 다른 사람은 현재의 워싱턴 기념탑 부근을 제안하였다.
20세기 초 미국은 남북전쟁의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국가 통합을 상징할 수 있는 대형 기념물 건립 필요성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의회는 1911년 공식적으로 링컨기념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여러 설계안이 경쟁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건축가 Henry Bacon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베이컨은 고대 Parthenon 신전을 모델로 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제안하였다.

워싱턴DC 링컨기념관(위키백과)
이 설계 선택은 단순한 미적 판단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인식되었고,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이 고대 민주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링컨을 기리는 장소 역시 민주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건축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1914년 2월 12일, 링컨 생일에 맞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건설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현재 기념관이 위치한 지역은 원래 늪지와 매립지였기 때문에 거대한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한 기초 공사가 매우 복잡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재 공급 문제도 발생하였다. 결국 약 8년의 공사 끝에 1922년 완공되었다.
완공된 기념관은 매우 강한 상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건물 외부에는 36개의 거대한 기둥이 세워졌다. 이 숫자는 링컨이 사망한 당시 미국 연방을 구성했던 주의 수를 의미한다. 기둥 위에는 이후 추가된 주 이름들이 새겨져 있어 미국 통합의 과정을 보여준다.
내부 중앙에는 조각가 Daniel Chester French가 제작한 거대한 링컨 좌상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약 10피트 규모로 계획되었지만 실제 공간 규모를 고려해 약 19피트(약 5.8m) 높이로 확대되었다. 무게는 약 175톤에 달한다. 만약 링컨이 실제로 일어선 자세라면 약 28피트 높이가 되었을 것으로 계산된다.
흥미로운 점은 링컨의 자세이다. 그는 단순히 왕처럼 위엄 있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다. 얼굴에는 강인함과 피로감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는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고통 속에서 국가를 이끌었던 지도자의 책임감을 표현하려는 의도였다.
기념관 내부 양쪽 벽에는 링컨의 두 연설문이 새겨져 있다. 하나는 Gettysburg Address이고 다른 하나는 제2차 대통령 취임 연설이다. 이 두 연설은 단순한 정치 연설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철학의 핵심 문서로 평가된다. 특히 인간 평등과 국가 통합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링컨기념관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는 건축 완성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 장소는 시간이 지나며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적 무대로 변하였다. 1939년 흑인 오페라 가수 Marian Anderson은 인종차별 때문에 공연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링컨기념관 앞에서 공연을 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1963년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Martin Luther King Jr.가 링컨기념관 앞 계단에서 “I Have a Dream” 연설을 발표한 것이다. 수십만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이 연설은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노예해방을 추진했던 링컨의 기념관 앞에서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가 인종평등을 외친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연결된 순간이었다.
링컨기념관은 단순히 한 대통령의 업적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갈등과 희생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실현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링컨기념관은 돌과 대리석으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인 것이다.
게티스버그 연설문
<Abraham Lincoln's Gettysburg Address (Nov.19, 1863)>
"…A new birth of freedom…"
연설의 배경: 미국 남북전쟁(1861∼65)이 진행되고 있던 1863년 11월19일, 링컨은 전쟁의 전환점이 된 혈전지 게티스버그(펜실베이니아 주)를 방문하고 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 참석한다. 그 식전에서 그는 불과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행하는데, 그것이 이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원문으로 총 266단어의 이 연설문은 다음날 게티스버그 신문에 실리고 미국사의 기념비적 텍스트의 하나로 전해지게 된다.
이 연설문은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링컨에 앞서 두 시간 연설했던 웅변가 에드워드에버렛(Edward Everett)이 『나는 두 시간 연설했고 당신은 2분 간 연설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두시간 연설이 묘지 봉헌식의 의미를 당신의 2분 연설처럼 그렇게 잘 포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는 것도 그런 일화의 하나이다. 링컨이 게티스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편지 봉투 겉면에 서둘러 쓴 것이 이 연설문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화이기보다는 만들어진 전설이다. 링컨이 신임했던 기자 노아 브룩스(Noah Brooks)에 따르면 봉헌식 며칠 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통령이 『연설문을 초안했으나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링컨의 성격, 연설문이 지닌 고도의 짜임새, 어휘 선택과 修辭的구도 등을 보면 이 연설문은 한 순간의 영감 어린 작품이기보다는 링컨이 상당한 시간을 바쳐 조심스레 작성한 문건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have con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not dedicate-we cannot consecrate-we cannot hallow-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번역]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萬人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內戰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뙈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祝聖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轉死者(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未完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未完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비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산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大義(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해설: 불과 266 단어로 된 이 짧은 연설문이 유명한 것은 그 짧은 길이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명분을 몇 마디 말 속에 간결하게 압축하고 미국史의 대 사건인 남북전쟁의 의미, 자유의 가치, 민주정부의 원칙을 그 핵심에서 포착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의 연설치고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고 쉬운 말을 쓰면서도 감동적일 수 있었던 예는 거의 없다. 나사렛 예수의 「봉헌」이라는 핵심어가 명사, 동사, 형용사의 형태로 모두 여섯 번 사용되고, 연관어「봉헌」이라는 핵심어가 명사, 동사, 형용사의 형태로 모두 여섯 번 사용되고, 연관어「헌신」(devotion)도 두 번 쓰이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유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나라』라고 규정한 첫 문장은 미국「독립선언서」에 천명된 건국의 의미와 이상을 다시 한 줄로 요약하고 「봉헌」의 첫 번째의미를 제시한다. 링컨의 이 言明(언명)은 이후 미국인들에게 『나는 민주주의의 명제에 봉헌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되어 부단히, 朝夕으로, 되돌아 온다. 그런데 그날 사람들이 게티스버그에 모인 것은 그 싸움터의 한 조각을 전몰자들에게「봉헌-헌납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봉헌」의 두 번째 의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부터 연설은 절묘한 逆轉의 논리를 발휘하여「봉헌」의 세 번째 의미로 넘어간다. 그 땅은 이미 死者(사자)들이 목숨을 바쳐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단에 신성하게 봉헌한 곳이므로, 묘지 헌납을 위해 모인 자들이 해야 할 것은 그들 자신을 미국 건국의 이상에「봉헌」하여 死者들이 미완으로 남긴 과제를 완수하는 일이다-이것이 그 逆轉논리가 제시하는「봉헌」의 세 번째 의미이다.
이 연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탄생(birth), 죽음(death), 재생(rebirth)이라는 상징적 은유 구조를 갖고 있다. 「탄생」의 은유적 이미지는 미국 건국을 「잉태」(conceived)와 「출산」(bring forth)이라는 말로 표현한 첫 줄에 나타난다. 「죽음」의 이미지는 게티스버그에서「목숨을 바친」사람들, 「명예로이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을 위한「마지막 안식처」같은 말들로 표현되고, 여기에는 그들을 죽게 한 것이 미국의 건국 理想에 가해진 시련과 죽음의 유혹이라는 암시도 들어 있다. 「재생」의 이미지는 死者를 위한 땅의 축성과 헌납(이는 정화/부활의 기원의식과도 같다), 신의 가호 아래 미국이「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구절, 그리고 마지막 절-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멸성의 다짐 속에 나타나 있다.(한국공공기관연구원 임춘재교수)
두번째 취임연설문
Fellow-Countrymen:
동포 여러분.
At this second appearing to take the oath of the presidential office, there is less occasion for an extended address than there was at the first. Then a statement, somewhat in detail, of a course to be pursued, seemed fitting and proper. Now, at the expiration of four years, during which public declarations have been constantly called forth on every point and phase of the great contest which still absorbs the attention, and engrosses the energies of the nation, little that is new could be presented. The progress of our arms, upon which all else chiefly depends, is as well known to the public as to myself; and it is, I trust, reasonably satisfactory and encouraging to all. With high hope for the future, no prediction in regard to it is ventured.
대통령직 취임선서를 하기 위해 두 번째 선 자리에서는, 첫 취임식 때처럼 길게 연설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첫 취임식에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추구해나갈 것인지 다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또 지금까지도 모든 관심을 흡수하고 국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국가적 대란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매순간 온갖 국면마다 수많은 공식 발표를 통해 끊임없이 대응해왔기 때문에, 새롭게 꺼내놓을 만한 말은 없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쟁의 진행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듯이,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고무적인 상황이라 믿습니다. 물론 미래를 향한 희망이 아무리 높아도 섣부른 예측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On the occasion corresponding to this four years ago, all thoughts were anxiously directed to an impending civil war. All dreaded it—all sought to avert it. While the inaugural address was being delivered from this place, devoted altogether to saving the Union without war, insurgent agents were in the city seeking to destroy it without war—seeking to dissolve the Union and divide effects, by negotiation. Both parties deprecated war; but one of them would make war rather than let the nation survive, and the other would accept war rather than let it perish. And the war came.
4년 전 처음 취임할 때 관심은 온통 임박한 내전에 쏠려있었습니다. 모두들 전쟁을 두려워했고 모두들 전쟁만은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바로 취임연설을 한 이 자리에서는 전쟁을 하지 않고 연방을 구출해야 한다고 온힘을 다해 역설했지만, 반란자들은 도시에 모여 전쟁을 하지 않고 연방을 파괴하는 방법을 궁리하고, 협상을 통해 연방을 해체하고 나라를 쪼개는 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 전쟁을 반대했지만, 한쪽은 국가를 유지하기보다는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국가가 소멸하게 두기보다는 전쟁을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One-eighth of the whole population were colored slaves, not distributed generally over the Union, but localized in the Southern part of it. These slaves constituted a peculiar and powerful interest. All knew that this interest was, somehow, the cause of the war. To strengthen, perpetuate, and extend this interest was the object for which the insurgents would rend the Union, even by war, while the government claimed no right to do more than to restrict the territorial enlargement of it. Neither party expected for the war, the magnitude or the duration which it has already attained. Neither anticipated that the cause of the conflict might cease with, or even before, the conflict itself should cease. Each looked for an easier triumph, and a result less fundamental and astounding. Both read the same Bible and pray to the same God; and each invokes His aid against the other. It may seem strange that any men should dare to ask a just God’s assistance in wringing their bread from the sweat of other men’s faces, but let us judge not, that we be not judged. The prayers of both could not be answered; that of neither has been answered fully. The Almighty has His own purposes. “Woe unto the world because of offenses! for it must needs be that offenses come; but woe to that man by whom the offense cometh!” If we shall suppose that American slavery is one of those offenses which, in the providence of God, must needs come, but which, having continued through His appointed time, He now wills to remove, and that He gives to both North and South, this terrible war, as the woe due to those by whom the offense came, shall we discern therein any departure from those divine attributes which the believers in a living God always ascribe to Him? Fondly do we hope—fervently do we pray—that this mighty scourge of war may speedily pass away. Yet, if God wills that it continue, until all the wealth piled by the bondsman’s two hundred and fifty years of unrequited toil shall be sunk, and until every drop of blood drawn with the lash, shall be paid by another drawn with the sword, as was said three thousand years ago, so still it must be sai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8분의 1은 흑인노예들이지만, 연방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있지 않고 남부지방에 몰려있습니다. 이들 노예는 특별하고도 강력한 이해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이러한 이해관계가 어쨌든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이해관계를 강화하고 영속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반란자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들은 연방을 쪼개는 것도, 심지어 전쟁까지도 불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 이해관계가 적용되는 지역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 말고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벌어진 전쟁이 이처럼 규모가 커지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는 양쪽 모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갈등을 초래한 원인이 전쟁이 끝나면서, 심지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고 양쪽 모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양쪽 모두 쉽게 승리할 것이라 기대했을 뿐, 이토록 근본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양쪽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신에게 기도하며, 상대방을 응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같은 신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남이 흘린 땀으로 빵을 얻는 자들이 정의로운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뻔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남을 심판하지 않으면 우리도 심판 받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쪽 기도도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느 쪽도 신의 응답을 온전히 받지 못했습니다. 전능한 신은 자신만의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사람을 죄짓게 하는 세상은 참으로 불행하여라. 이 세상에 죄악의 유혹은 있게 마련이나 남을 죄짓게 하는 자는 참으로 불행하도다.” 미국의 노예제도가 바로 그 같은 세상의 죄 가운데 하나이고 신의 섭리에 따라 이 세상에 있게 마련인 죄라면, 일정시간 동안 지속된 그 죄를 신께서 이제 그만 거두시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죄를 짓게 한 자들로 인한 재앙을 징벌하고자 신께서 남과 북으로 하여금 이 끔찍한 전쟁을 치르게 하신 것이라면, 살아계신 신을 믿는 자들이 언제나 찬양하는 그분의 신성한 뜻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이 거대한 재앙 같은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품삯 한 푼 주지 않고 노예의 땀으로 250년 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3,000년 전 말씀처럼 채찍으로 남의 피를 흘리게 한 자가 스스로 칼에 맞아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자기 피로 되갚는 날까지, 이 전쟁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심판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도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ing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전투에서 나가 고통을 겪은 사람과 미망인과 고아가 된 아이를 돌보고, 우리 모두, 또 다른 모든 나라들과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매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