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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왜관 구상문학관을 찾아서

great660 2026. 6. 17. 07:23

경북 왜관 구상문학관을 찾아서 네이버지도 캡처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

 

구상문학관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문학관으로,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인 구상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공간이다. 구상은 1953년부터 왜관에 정착하여 약 2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탄생하였다. 칠곡군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2002년 구상문학관을 개관하였다. 문학관에는 시인의 육필원고, 사진, 서화, 편지,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가 실제로 집필하던 공간인 관수재가 복원되어 있다. 또한 시인이 기증한 수만 권의 장서가 보존되어 있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 문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구상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동의 역사를 모두 경험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체험은 그의 문학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시에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의 의미와 역사적 현실, 그리고 신앙과 영원성에 대한 탐구를 시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감상적인 정서보다 철학적 사유와 정신적 탐구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시를 통해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구상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종교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평생 유지하였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자신의 시에 깊이 반영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단순한 종교시가 아니다. 그는 서양의 기독교 사상뿐 아니라 동양의 불교와 유교, 노장사상까지 폭넓게 수용하였다. 이러한 융합적 사고는 그의 작품에 독특한 형이상학적 깊이를 부여하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 현실과 초월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동서양 정신문화의 만남을 시적으로 구현하였다. 때문에 그의 시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성격을 띤다.

 

구상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전쟁과 인간성이다. 그는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전쟁이 남긴 참혹한 상처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인식하였다. 대표작인 「초토의 시」 연작은 폐허가 된 조국의 현실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전쟁의 비극만을 묘사하지 않았다. 폐허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도 구원과 화해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태도가 그의 시를 단순한 전쟁문학이 아니라 인간 구원의 문학으로 평가받게 만든 이유이다.

 

또한 구상은 자연을 매우 중요한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왜관 시절에 바라본 낙동강과 주변 자연은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의 자연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존재의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강물의 흐름은 시간과 역사,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고, 산과 하늘은 영원성을 암시한다. 그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순수성과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다루는 일반적인 서정시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구상에게 자연은 인간을 초월적 진실로 인도하는 하나의 상징체계였다.

 

구상의 시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강한 윤리의식이다. 그는 시인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선동이나 이념적 주장에 함몰되기를 거부하였다. 실제로 여러 차례 정치 참여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시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권력이나 이념보다 인간의 양심과 진실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도덕적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구상은 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지평을 넓힌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한국 문단 내부의 시인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문제를 다룬 세계적 문인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시는 특정 시대나 지역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

 

구상문학관은 이러한 시인의 정신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문학관을 둘러보면 구상이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증언자이자 사상가였음을 알 수 있다. 관수재의 소박한 서재와 육필원고, 그리고 수많은 책들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유하며 살아갔는지를 보여준다. 문학관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역사, 신앙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던지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구상의 시세계는 결국 인간이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진실과 영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한국 현대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구상문학관 주소는 다음과 같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

구상문학관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구상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2002년에 개관한 문학관이다. 시인이 20여 년간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했던 '관수재'가 복원되어 있으며, 사진자료·육필원고·서화·편지·기증도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 정보

  • 관람료: 무료
  • 문의: 054-979-6447
  •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 주차 가능

왜관역에서 도보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방문이 가능하다.

 

 <초토의 시>(1∼15)

【시 전문】- 구상(具常)

   (1)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초토(焦土)의 시(詩)>(청구출판사.1956) -

 

   (2)

   제 먹탕으로 깜장칠한 문어 한 마리를 무릎에 싸안고서 어르고 있는 광경이라면 모두 웃음보를 터치리라.

   그러나 앞자리에 마주 자리잡은 나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정식아! 볶지 마아, 빠빠에게 가면 까까 많이 사 줄게'

   이건 또 너무나도 창백한 아낙네가 정식이라고 이름붙은 검둥애에게 거의 애소에 가까운 달램이었다.

   자정도 넘은 밤차, 희미한 등불 아래 손들의 피곤한 시선은 결코 유쾌한 눈짓이 아니었고 칭얼만 대는 검둥애의 대구리와 울상이 된 그 엄마의 하이얀 이마 위 땀방울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이 뒤틀어대는 흑백(黑白)의 모자상(母子像)을 보다못해 호주머니를 뒤져 전송 나왔던 친구가 취기 반으로 사주던 해태 캬라멜을 꺼내 까서 녀석에게 넌지시 권해본다.

   아니나다를까, 적중이었다. 녀석은 흑요석(黑耀石)보다도 더 짙은 눈을 껌벅이며 깜장손으로 냉큼 잡아채어 입에 넣더니 제법 의젓해지지 않는가.

   두 개, 세 개, 네 개, 이제는 아주 나의 무릎으로 슬슬 기어오르며 이것만은 차돌같이 흰 이빨을 드러내어 웃어 반기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르면 안 논다는 재주 없다. 눈물이 글썽하여 연신 미안스러워하는 아낙네에게 녀석을 아주 받아 안고 창경원에 가서 원숭이 놀리는 그 꼬락서니가 되어 캬라멜과, 애새끼와 있는 재주를 다 피워 얼러댄다.

   이러는 사이에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은 나의 구조를 넋없이 바라보던 아낙네가 신명(身命)의 고달픔이 차고 말았던지 사르르 잠들어버리고 그렇게 날치던 애새끼 역시도 이제는 어지간히 흡족했던지 내 품에서 색색 코를 고는 것이 아닌가.

   꼼짝없이 검둥이 애비 꼴이 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심정속에서 그 채로 눈을 감고 만다

   나의 머리에는 이 녀석의 출생의 비밀이 되었을 지폐 몇 장이 떠오른다.

   이 검둥이의 애비가 쓰러져 숨졌을 우리의 어느 산비탈과 어쩌면 그가 살아 자랑스레 차고 갔을 훈장을 생각해본다.

   저 아낙네의 지쳐 내던져진 얼굴에서 오늘의 우리를 느낀다.

   숨결마저 고와진 이 무죄하고 어린 생명을 안고서 그와 인류의 덧없는 운명에 진저리친다.

   차는 그대로 밤을 쏜살같이 뚫어 달리고 손들은 모두 지쳐 곤드리졌는데 이제는 그만 내가 흑백(黑白)의 부자상(父子像)이 되어 이마에 땀방울을 짓는다.

 

   (3)

   대낮부터 한잔들 얼려 곤드레가 된 ‘푸로펫서’ H군의 뒤범벅인 이야기가

     - 인류는 이미 자멸의 공포와 절망 속에 떨고 있다.

   이쯤 나오자 일행, S 기자와 나는 그를 부축해 어깨동무하고 나선다.

   뒤이어 한 목로에서 연방 들어 마시던 막버리꾼패도 같은 행길 위에 ‘갈지字’를 놓는다.

 

   서산에는 아직도 태양이 빨가장이 타고 있는데,

   이 눈물나는 족속들은 땅으로 땅으로 떨어져만 가는 고개를 뒤틀어 재껴 보았댔자

 

   머리로 가슴 속으로 스미어 드는 짙은 어둠은

   마치 먹풀은 한 울타리에 호박뎅이가  걸린양만 보여 웬수로구나.

 

   인류는 요 모양으로 우주보다 먼저

   밤을 작만 하는지야.

 

   (4)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랄까.

   난데없이 팔에다 ‘해방(解放)’이라는 붉은 완장을 단 년석이 먼저 나를 가로 타고 사지를 꽁꽁 묶기 시작하자, 이번엔 ‘弗’이라는 노오란 완장을 단 년석이 나타나 숫째 나의 목을 졸라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숨져 가며 허위이대면서도 년석들의 정체를 알아 맞추기에 머리 악을 써 보았으나 노상 익숙히 보아온 얼굴들이건만 요놈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를 압살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끝내 모르는채 기절하고 말었다.

 

   순간! 이것이 아마도 유명(幽明) 갈르는 순간인가 보다. 천공엔 성신봉림(聖神峰臨)불혀같은 불떵이로 꽉 차 있는데 꼼짝없이 된 나는 지구와 더불어 쳇바퀴 돌듯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러워, 아이구 어지러워, 어머니, 누구, 아내, 홍아(鴻兒), 성아(晟兒), 형님, 어머니, 소리쳐 불러도 울어도 영영 다시 얼굴들은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고 답답함이 불가마 속인데.

 

   오오라, 홀연이 내 시곗줄에 매달은 통고(痛苦)의 성모패가 아슴히 기억나는 무슨 놀램과 바램에 ‘주여 나를 건지소서’ 한마디 웨친 또 다음 순간.

 

   어느 유화에선가, 또는 영화의 어느 장면에선가 본 그런 호수가 맑은 숲 그늘 아래, 아니야 그저 시원한 해방과 휴식 속에 내가 아주 편히 누워있는데.

 

   차츰 깃들어 오는 맑은 정신 속에서 곰곰이 생각나는 것은 인류도 이렇게 꿈처럼 어저께의 인업(因業)에서 깨어나고 기적과 같이 부활하여 다사러운 지상을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인가, 주여 당신에게 다시 한 번 빌어 묻고 나에게도 타일러 보는 폐허꿈 아닌 꿈.

 

   (5)

   第Ⅰ景

   행길 위에 머슴애들이 우 몰려가 수상한 채림의 여인 하나를 에워 쌓는다. 돌풀매를 하는 놈, 소똥 말똥을 꿰메 달어 막대질을 하는 놈,

   ‘양갈보’「‘가ㄹ-보’ ‘양가 보’

   더럽혀진 母性을 향하여 이들은 저희의 律法으로 다스리려는 것이다.

   “내가 네들 어미란 말이냐, 양갈보면 어때! 어때!”

   거품까지 물어 발악하는 여인을 지나치던 미군찦이 싣고 바람같이 흘러간다. 아우성소리만 남고.

 

   第Ⅱ景

   짙게 양장한 여인이 지나간다. 꼬마들은 눈을 꿈벅 꿈벅 한다. 한 년석이 살살 뒤를 밟아 여인의 뒤잔등에다

   ‘一金 ×千圓也’라는 꼬리표를 재치있게 달아 붙친다.

   ‘와하’ ‘와하하’ ‘와하하하’

   자신들의 抗拒로서는 어쩔수 없음을 깨달은 꼬마들의 自虐을 겸친 모멸의 哄笑가 터지는 것이다.

   여인은 신뒤축을 보살펴 보기도 하고 거름새를 고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사러지기까지

   ‘와하’ ‘와하하’ ‘와하하하’는 끄치지 않는다.

 

   第Ⅲ景

   이러한 짖구진 작란도 얼마 안가 뜸하여지고 板子幕 어둠 컴컴한 골목길에는 군데 군데 꼬마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서 있다.

   黑白의 모주 병정들이 어른거릴량이면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억센 팡들을 잡아 끄는 것이다.

   ‘핼로 OK’ ‘마담, 나이스’ ‘나이스 OK’

   지폐맛을 본 꼬마들은 이 참혹한 현실을 그들대로 活用하게끔 되었다.

 

   (6)

   시인(詩人)과 창녀(娼女)는 굴(窟)을 나선다.

   쏟아지는 장마비를 기화(奇貨)로 시인(詩人)이 산책(散策)을 제안(提案)했던 것이다.

   아침 다섯시. 거리엔 개새끼 한 마리 어른거리지 않는데 열흘이나 마구 내려퍼붓는 바람에 행길은 보또랑이 터진듯 흙탕물속을 가야만 했다.

    - 아메요 후레 후레, 나야미오 나가스마데,

   무심중 중얼거리며 詩人은 向方을 잡지 못한다.

 

     - 어디로 갈 것인가,

     - 이 창녀(娼女)는 어쩌자고 따러 나섰을가. 

     - 인생(人生)은, 흥.

   궁리(窮理)를 짜면 짤수록 몰라진다.

 

   흐느끼는 비빨에 ‘베르레느’.

   전쟁(戰爭)만 치러야 하는 조국(祖國).

   운명(運命)에 떠나가는 金삿갓.

   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지저분만하다.

   키륵 키륵 허망(虛妄)에 웃어 본다.

 

   어느 길 언덕에 다다른다. 옳아!

   여기는 성당9聖堂), 마리아상(像)도 빗망울에 딸아우는고나.

     - 이제는 그만 돌아가지

     - 네, 또 오세요.

   안녕.

   안녕.

   시인(詩人)의 악(惡)과 창녀(娼女)의 선(善)은 간밤 한자리 꿈의 미련(未練)도 없이 갈린다.

 

   평행선(平行線)! 선(善)과 악(惡)의 신비(神秘)한 평행선(平行線)!

 

    시인(詩人)은 이 사실(事實)이 원자탄(元子彈)보다도 인류(人類)의 종언(終焉)보다도 소름이

    끼친다고 생각하며

    다시 흙탕물속을 저벅 저벅 걸어간다.

 

   (7)

   시인(詩人)은 어께나 재듯이 친구 하나를 끌고 호기 있게 들어선다. 창녀(娼女)는 반갑고도 사뭇 미안스러워 어쩔 바를 모른다.

   방에 들어 흘깃하면 송(松)ㆍ학(鶴) 수틀아래 합장한 예수아기의 힌 석고상이 매달려 있다.

   시인(詩人)은 올적마다 쓰디쓴 웃음을 풍기며

     - 이건 네 아이 얼굴이가?

   퉁겨 묻고는

     - 너도 막달레나 이냐.

   혼자 중얼댄다.

   진로(眞露) 한병과 스루메 한 마리가 상위에 얹혀 들어온다.

   엎친 술을 한두 잔 켜고 나서는 이제 남은 흥정을 부쳐야 했다.

     - 이 친구 색씨 하나 똑 딴것으루 데려와!

     - 아주 마음 좋은 사모님으로 말이야

     - 빨랑, 빨랑, 졸려

   호통에 못 이겨 부스스 이러서 나간 창녀(娼女)는 얼마쯤후 방문을 빼꼼히 열고 눈짓으로 시인(詩人)을 불러 내간다.

     - 저, 저, 저손님 다리 하나 없으시죠.

     - 응, 왜그래, 상이용사야

     - 아마 동무애들이 안받을거에요, 그, 그래서 선생님 형편이라면 제가 모시죠.

     - 으음

   시인(詩人)은 이 최상급(最上級)의 선의(善意)앞에 흠찍 놀라면서

     - 그래, 그래 그래야 나도 새 장가 들지

   하고 얼버무려 버린다.

   악(惡)의 껍질같은 칠흑 어둠이 덮인 창굴(娼窟) 마당에다 시인(詩人)은 오줌을 깔기면서 이 굴속에도 비록 광채(光彩)는 없으나 별과 詩가 깃들어 있음을 다사하게 녁인다.

 

   (8)

      <적군 묘지(敵軍墓地)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인공산(無人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9)

   눈떵이가 구을듯이 커저만 가던

   허접스런 因業들이랑

   봄 여울에 씻은듯 녹아나 흘러라.

 

   영욕(榮辱)의 해골마져 타버린

   폐허 위에다

   이 봄에도, 우리 모다

   목숨의 씨를 뿌리자.

 

   하루 아침에

   하늘 땅이야 꺼진다손

   제사, 나를 어짤것이냐…….

 

   내일의 열매야 기약지도

   않으련만

   운명(運命)과는 저울할 수도 없는

   목숨의 큰 바램.

 

   우리의 復活을 증거하여

   무덤 위에 필

   알알의 목숨의 꽃씨를

   즐거히 정성드려 뿌리자.

 

   (10)

   어둡다구요. 아주 캄캄해 못살겠다구요. 무엇이 어떻게 어둡습니까. 그래 그대는 밝은 빛을 보았읍니까. 아니 생각이라도 하여 보았읍니까. 빛의 밝음을 꿈꿔도 안보구 어둡다 소리 소리 지르십니까. 설령 그대가 낮과 밤의 明暗에서 광명과 암흑을 헤아린다 칩시다. 그러량이면 아침의 먼동과 저녁 노을엔 어찌 무심하십니까. 보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사정은 노상 잊으십니까. 됩데 어둠 뒤에 가리운 빛, 빛 뒤에 가리운 어둠의 意味를 깨치서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제사 정말 암흑이 두려워지고 광명이 바래질 것이지, 건성으로 눈감고 어둡다 어둡다 소동을 이르킬 것이 아니라 또 건성으로 광명을 바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진정 먼저 빛과 어둠의 얼골을 마주쳐다 봅시다. 빛 속에서 어둠이 스러질때까지.

 

   (11)

   <송영보(送迎譜)>

   나 너를 보내노라.

   찢어져 피묻은 가슴

   조각 조각 흔들어

   나 너를 보내노라.

 

   이제사 나 너 세월에게

   청춘의 바램은커녕

   아쉬움도 모르는체

   눈뒤집혀만가는 이 거리에

   그저 심심히 서서

   너를 세월이라고 보내노라.

 

   나 너를 맞노라

   찢어져 피묻은 가슴

   조각 조각 흔들어

   나 너를 맞노라

 

   여기는 나의 원수와

   원수를 기르는 벗들이

   마주 서는 곳

   네가 나를 탓하지 않듯이

   나도 너를 탓하지 않고

   너를 세월이라고 맞노라.

 

   (12)

   땅이 꺼지는 이 요란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우리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헛개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닥아오는 불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가는

   어린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13)

   나 여기 서 있노라.

 

   나를 바래고 틀림없이

   거기 서 있는

   너를 우르러

   나 또한 여기 서 있노라. 

 

   이제사 달가운 꿈자리커녕

   입맞춤도 간지러움도 모르는

 

   이렇듯 넉넉한 사랑의 터전 속에다

   크낙한 順命의 뿌리를 박고서

   나 너와 마주 서 있노라.

 

   일월(日月)은 우리의 연륜(年輪)을 묵혀가고

   철따라 입새마다 꿈을 익혔다

   뿌리건만.

 

   오직 너와 나와의

   열매를 위하여

   종신(終身)토록 이렇게

   마주 서 있노라.

 

   (14)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險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것도 같네만 極惡無道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겐가 하구 곰곰중일세.

 

   깝짝추위에 요새 며칠 感氣로 누웠는데 忘憂里 무덤속에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쩧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

 

   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利錫이만은 당(장)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치도 않어 참 좋겠네. 어디 顯夢이라도하여 저승소식 알려 줄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었나. 왜.

 

   (15)

           <휴전협상(休戰協商) 때>

   조국(祖國)아, 심청(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詩人)이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저기 모두 세기(世紀)의 백정(白丁)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 하다더냐.

 

   조국(祖國)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너를 또다시 두 동강을 내려는데

   너는 오직 생각하며 쓰러져가는 갈대더냐.

 

   원혼(寃魂)의 나라 조국(祖國)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비명(非命)뿐이었지.

   여기 또다시 너의 마지막 맥박이듯

   어리고 헐벗은 형제들만이

   북(北)으로 발을 구르는데

   먼저 간 넋을 풀어줄 노래 하나 없구나.

 

   조국(祖國)아, 심청(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조국(祖國)아!

【감상】

   1956년 발표된 <초토의 시>는 15편으로 된 연작시이다. 6ㆍ25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향토적인 서정성에 바탕을 두고 나름대로의 생명의지를 휴머니즘의 토대 위에서 그려내고 있다.

   전체 15편의 연작시 형태로 창작되었으며, 시대적 현실, 예를 들면 '판잣집', 검둥이 애새끼' '창녀' '무덤'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활' '구원' '속죄의식'  '밝음' '조국통일'과 같은 긍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작자의 의식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휴전 협상 때'라는 부제가 붙은 초토의 시 15에서는 '조국아, 심청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시인이 너의 이름을 부르량이면/목이 멘다'라고 하며 불쌍한 조국을 탄원하고 있다. 휴전 협상은 또 다른 분단을 의미하므로 작자는 초역사적 양심의 목소리, 자기 희생을 통하여 조국의 진정한 해방을 기원하고 있다.

 

   이 작품은 6ㆍ25전쟁의 민족적 비극의 체험을 바탕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어둡고 밝은 명암의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했다.

   사전적인 의미로 '초토(焦土)'란 까맣게 탄 흙이나 땅"을 말한다. 전쟁 후의 황폐화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시적 상황이 집약되어 있는 말이다. 골목을 걷던 '나'는 '하꼬방'의 '유리딱지' 같은 창에서 '불타는 해바라기'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본다. 이 같은 따뜻한 시선은 시행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눈부신 '햇발',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망울진 '개나리', '죄 하나도 없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앞니 빠진 '미소', 이런 것들 때문에 삶의 열렬한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시이다.

   연작시 각 편은 모두 독립된 한 편의 시이지만, 15편 전체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윤리의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초토의 시> 15편 연작시(連作詩는)로 된 이 작품의 현장은 6ㆍ25가 빚어낸 비극적 현실이다. 그러나 사명을 짊어지는 그의 시는 결코 그 비극적 현실의 현장으로서만 존립하지 않는다. 그 현장을 초극(超克)하는 의지로서 혹은 기원(祈願)으로서 존립하는 것이다.

   15편 가운데 <초토의 시 10>은 그 대표적 예이다.

   [어둡다구요. 아주 캄캄해 못살겠다구요. 무엇이 어떻게 어둡습니까. 그래 그대는 밝은 빛을 보았읍니까. 아니 생각이라도 하여 보았읍니까. 빛의 밝음을 꿈꿔도 안보구 어둡다 소리 소리 지르십니까. 설령 그대가 낮과 밤의 明暗에서 광명과 암흑을 헤아린다 칩시다. 그러량이면 아침의 먼동과 저녁 노을엔 어찌 무심하십니까. 보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사정은 노상 잊으십니까. 됩데 어둠 뒤에 가리운 빛, 빛 뒤에 가리운 어둠의 意味를 깨치서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제사 정말 암흑이 두려워지고 광명이 바래질 것이지, 건성으로 눈감고 어둡다 어둡다 소동을 이르킬 것이 아니라 또 건성으로 광명을 바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진정 먼저 빛과 어둠의 얼골을 마주쳐다 봅시다. 빛 속에서 어둠이 스러질때까지.]

   그에게 있어서 어둠이란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요,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둠에의 맹목적인 예속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어둠의 내용은 똑똑히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다만 어둠에 갇힌 무의미한 절망과 치욕이 잇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의 경우, 어둠의 내용 즉 의미를 똑똑히 파악한다는 일은 곧 빛의 의미를 명확히 알아차린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은 초극(超克)의 정신이 <초토의 시> 전편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 전봉건 : <한국문학대사전>(1973) -

 

   <초토의 시>는 <여명도(黎明圖)>의 마지막 구절인 ‘죽어 가는 사나희의 미소(微笑)가/고웁다’와 관련된다. 즉 ‘솔직히 말해 당시 남북을 막론하고 시인들은 해방 찬가에 취해 있을 때 나의 시인적 예지(叡智)랄까 감촉은 이 여명(黎明)이 결코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불길한 조짐과 그 시련으로 차 잇다는 실감’ 속에서의 북한의 새로운 암흑 상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또 하나의 새 힘’이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런 ‘대광복(大光復)의 날’을 위해 ‘자신은 희생자가 되리라는 염원’과 ‘소복한 나의 여인아/사흘만 참으라’는 ‘수난의 장(章)’의 크리스트의 모방으로서의 부활의 실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기희생을 각오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럴 때만 부활을 통한 자기 구제가 가능하다는 시실, 즉 기독교적 패러독스의 논리 위에 서 있다. 그 논리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대립을 거부하는 사랑 혹은 화해의 방식,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율의 실천이다. 이는 민족이라는 추상적 매개 개념을 통해 구상(具常)의 방식으로 달성된다. <초토의 시> 연작 15번째인 ‘휴전협상 때’에서 그는,

   [조국(祖國)아, 심청(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詩人)이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라고 외치는 바, 심청의 희생이 역사 안에서의 물음일 때 그것은 세계사의 인정과 세력 균형을 위한 휴전협상일 것이며, 역사 너머에서의 문제라면, 심청 부(父)의 눈을 뜨게 함, 즉 한민족(韓民族)의 생존권을 위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휴전협상은 한민족의 실명(失明)의 지속을 의미할 것이며, 시인은 이 단계에서 동족상잔(同族相殘)에 대한 뉘우침, 강렬한 죄의식으로 응어리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의식은 불모의 땅, 조국 그것을 시인 자신의 운명으로 감내하는 방향을 지향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 너머에서 끊임없이 속삭여 오는 목소리, 구원(救援)과 정의(正義)를 약속하는 그 목소리를 개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앓는 일이다. 그 경지는 체념과는 분명히 다르다. 스스로가 크리스트의 모방 즉 자기 희생을 실천할 때만이 가능한 차원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심청을 팔아먹은 측면에 대한 분노가 산문으로 퉁겨져나오는 것이다. 구상에 있어 그것은 사회시평집(社會時評集) <민주고발(民主告發)>이다.  대구매일의 칼럼을 모은, 그래서 ‘동란 중 고초를 함께 한 대구 시민의 이름’에 바친 이 시평집은 자유당 치하의 불의에 대한 불덩이 같은 고발장이었기에 발매금지는 물론 저자의 피신 소동까지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한 점 불순이 없었기에 그것에 비례하여 불의에 참지 않았다.

   이러한 적개심을 그는 시에서는 ‘찬만 근의 가슴의 아픔’으로 표현하고 있다. <초토의 시> 연작 8번째인 <적군묘지(敵軍墓地)에서>의 일부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인공산(無人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 김윤식 : <한국 현대문학 명작사전>(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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