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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가(백불고택)

great660 2026. 8. 29. 21:21

대구 동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가(백불고택) 네이버지도 캡처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자리한 경주최씨 종가(慶州崔氏 宗家)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문화와 문중(門中) 문화를 보여주는 유서 깊은 고택이다. 이 종가는 흔히 옻골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전통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 옻골마을은 대구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산과 들이 어우러진 전통적인 농촌 경관과 조선시대 이후의 한옥 건축, 종가의 생활문화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어 대구의 역사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이다. 특히 경주최씨 종가는 단순히 오래된 한옥 한 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문중이 수백 년 동안 터전을 이어오면서 형성한 정신적·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옻골마을에 경주최씨가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인 1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최씨 가문의 인물인 최동집(崔東集)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최동집은 임진왜란 이후의 사회적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던 시기에 이곳에 정착하여 가문을 일으켰으며,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이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마을을 경주최씨의 집성촌으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옻골마을에 남아 있는 여러 고택은 각각 독립된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문중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최씨 종가는 이러한 옻골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이다. 일반적으로 종가란 한 문중에서 중심이 되는 집을 의미하며, 단순히 큰 규모의 주택이라는 뜻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종가는 조상에 대한 제례를 비롯하여 가족과 문중의 중요한 의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였으며, 가문의 역사와 전통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종가의 구조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주거생활뿐 아니라 유교적 가족질서와 제례문화, 남녀의 생활공간 구분,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옻골마을의 경주최씨 종가는 흔히 백불고택(百弗古宅)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기본적인 공간구성과 건축적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한옥은 단순히 방과 마루를 연결하여 만든 주택이 아니라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와 가족관계, 생활방식, 자연관 등이 공간에 반영된 건축물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등의 공간이 서로 기능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은 가족 구성원과 방문객의 관계에 따라 사용되었다. 이러한 공간적 구성은 당시 양반가의 생활질서가 어떻게 주택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대구 동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가(백불고택)(대구광역시)

 

특히 사랑채는 조선시대 사대부 주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랑채는 가장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시에 외부 손님을 맞이하고 학문을 논하며 문중의 여러 일을 처리하는 장소였다.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선비에게 학문과 교유는 중요한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사랑채는 단순한 개인 공간이라기보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장소였다. 반면 안채는 가족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중심 공간으로서 상대적으로 외부인의 접근이 제한되었다. 이처럼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구조는 조선시대의 가족제도와 남녀 공간 분리의 원칙이 주택에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옻골마을의 한옥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담장과 골목길, 주변의 자연환경이 함께 이루는 경관이다. 전통마을에서는 각각의 집이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구성되지 않았다. 집과 집 사이의 담장, 골목, 대문, 마당, 주변의 나무와 논밭 등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마을 경관을 형성했다. 옻골마을의 돌담길은 이러한 전통적인 마을 공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돌과 흙을 이용하여 만든 담장은 주택의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면서도 골목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마을 전체에 통일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전통마을의 공간구조는 현대 도시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현대의 주거지는 도로와 주차장,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전통마을에서는 자연지형과 주택, 골목길, 담장, 농경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옻골마을을 걸으면 좁은 골목길과 낮은 돌담, 한옥의 지붕, 오래된 나무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인 농촌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경관 자체가 역사적 유산이며, 종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건물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주최씨 종가의 역사적 가치는 무엇보다 가문의 지속성과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집안이 특정 지역에 정착하여 여러 세대에 걸쳐 생활한다는 것은 단순한 혈연관계의 지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토지의 관리, 교육, 혼인, 제례, 향촌사회에서의 교류 등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활동은 지역사회의 변화와도 연결되었다. 종가는 이러한 활동이 축적되는 중심 공간이었다. 따라서 종가를 살펴보는 것은 한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는 동시에 조선시대 이후 대구 동구 일대의 향촌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시대의 종가에서 중요한 것이 제례(祭禮)였다. 유교사회에서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가족과 문중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대 간의 관계를 이어가는 사회적 의례였다. 종가는 이러한 제례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였으며, 종손을 중심으로 문중 구성원들이 모여 선조의 뜻을 기리고 가문의 전통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사회에서 그 형태가 많이 달라졌지만 종가와 종택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종가는 교육과 학문을 중시한 전통 사대부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자녀에게 유교 경전과 한문을 가르치고 과거시험을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한 가문의 관심사였다. 따라서 종가에는 문집이나 족보, 고문서 등의 기록물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기록들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옻골마을 역시 경주최씨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여러 자료가 전승되어 있어 대구 지역의 전통문화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주최씨 종가를 이해할 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건축과 자연의 조화이다. 전통 한옥은 주변의 지형과 기후를 고려하여 건축되었다. 남향을 선호하고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며, 처마를 이용하여 햇빛과 비를 조절하였다. 온돌과 마루를 함께 사용하는 구조는 한국의 기후와 생활방식에 적합하도록 발전한 결과였다. 여름에는 마루에서 바람을 받아들이고 겨울에는 온돌방에서 따뜻하게 생활하는 방식이 하나의 주택 안에서 이루어졌다. 종가의 건축은 이러한 전통 한옥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장식보다는 비례와 절제, 자연과의 조화에서 드러난다. 기와지붕의 곡선과 나무기둥, 흙벽, 마당, 담장 등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종가의 공간은 외부에서 바라볼 때에는 다소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연결되는 개방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외부의 자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전통적인 주거방식이었다.

 

옻골마을이 오늘날 중요한 관광·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러한 역사성과 경관성이 함께 작용하였다. 대구는 급격한 도시화를 경험하면서 많은 전통마을과 한옥이 사라졌지만 옻골마을은 도시의 확장 속에서도 전통적인 마을 형태를 비교적 잘 유지하였다. 이 때문에 시민과 관광객이 대구의 전통적인 생활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특히 도심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조선시대 이후의 전통마을과 종가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종가와 전통마을의 보존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통가옥은 사람이 실제로 생활하면서 유지되어 온 공간이기 때문에 건축물의 보존과 함께 생활문화의 보존도 중요하다. 한옥의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안전과 편의시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와 소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문화재적 가치와 주민의 생활권을 어떻게 균형 있게 보호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또한 종가의 가치를 지나치게 특정 가문의 명예나 전통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에는 종가를 한국 전통사회가 남긴 역사문화유산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종가에는 유교적 가족제도와 신분질서라는 역사적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그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조건과 한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역사적 이해에 더욱 적절하다. 전통문화의 보존은 과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 가운데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요소를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경주최씨 종가는 이러한 점에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도 가치가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단순히 한옥의 모양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족관계와 주거생활, 제례, 교육, 향촌사회, 자연관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현대의 아파트와 전통 한옥을 비교함으로써 주거환경이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생각할 수 있다. 종가라는 공간은 건축사와 생활사, 사회사, 지역사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역사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옻골마을의 경주최씨 종가가 갖는 의미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데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주거공간이 현대의 대구라는 대도시 안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대구가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지만 둔산동의 옻골마을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마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도시의 역사적 층위가 단순히 현대적인 건축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마을과 고택, 길과 담장에도 축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대구 둔산동의 경주최씨 종가는 한 채의 오래된 한옥이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경주최씨 가문의 정착과 번영, 조선시대 사대부의 생활문화, 유교적 제례와 가족제도, 전통 한옥의 건축양식, 그리고 옻골마을이라는 전통적인 공동체 공간이 함께 남아 있는 역사문화유산이다. 종가와 주변 고택, 돌담길과 자연환경을 함께 살펴볼 때 그 가치가 더욱 분명해진다. 옻골마을은 현대 대구의 도시적 풍경과 대비되는 전통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대구의 지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따라서 경주최씨 종가는 과거의 유물을 단순히 바라보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과 마을, 주거와 문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역사문화 공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구 둔산동의 경주 최씨 종가(宗家)옻골마을 안에 있다.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 (둔산동)
지번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86 일대로 안내되는 경우가 있다. 대구시 관광자료에서도 옻골마을과 경주 최씨 종가의 주소를 동구 옻골로 195-5로 안내하고 있다.

다만 경주최씨 종택(백불고택) 자체의 지번은 둔산동 306으로 소개된 자료도 있어, 방문 목적이라면 ‘옻골마을 경주최씨 종택’으로 검색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옻골마을은 1616년 최동집(崔東集)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경주 최씨 집성촌으로, 경주 최씨 종택과 여러 고택, 돌담길이 보존되어 있는 전통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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